이번에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 따위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면,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에피카의 이상 중력으로 인해 먹통이 되어버린 우주선과 함께 맨정신으로 공중에서 추락했다는 뜻이다.

다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첫 번째, 추락 지점이 바다 한복판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우주선의 목적이 목적이었으니만큼 웬만한 극한 환경은 물리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었다.

만 하루가 지난 후에야 우주선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복구되었고(그 과정에서 많은 기계공학적 수고가 있었지만 묘사를 생략하도록 한다), 베스타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음을 알리듯 기능을 회복한 위성 항법 장치의 안내에 따라 나는 장장 세 달에 가까운 시간만에 본래 출발했던 우주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히익, 루, 루, 루, 루카다아!”

“뭐야, 루카? 진짜 돌아왔네!”

“잘 돌아왔다.”

타다닥-

반가운 목소리들과 함께 바쁜 발소리가 우르르 들려왔다. 플루토, 에리카, 크리스. 고작 두 달 남짓 못 봤다고 그리워진 얼굴들이 우주국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나와 나를 둘러쌌다. 특히나 반가운 것은 스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플루토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플루토는 나를 보자마자 후다닥 달려나와 무너지듯 내 허리를 껴안고 들러붙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흐어엉, 루카아아아아.”

이렇게까지 반가워할 일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쳐다보자 크리스는 파리라도 씹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차에 에리카가 멋쩍게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아… 하하, 플루토가 루카 네 걱정을 많이—”

“루카아아, 크리스가 나 혼냈어어어어어어. 무서워, 흐어어어엉…….”

“……아니, 혼낸 건 그날 하루인데 도대체 몇 달을 담아두고 있는 거야.”

질렸다는 투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이 저런 식으로 들으라는 듯 혼잣말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주국 로비에서 몇 분이고, 플루토의 눈물과 콧물로 겉옷이 축축해지는 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바쁘게 해후를 나누고 있으려니 소리를 들은 우주국의 다른 직원들도 로비로 몰려나와 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급기야는 국장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내게는 고작해야 세 달도 안 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지만, 웜홀 중력권의 영향으로 인한 것인지 국장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10년만 늙었다니 다행이군요. 실제로 여기서는 19년이 흘렀습니다.”

“……아.”

“뭐, 다행이랄지. 우리가 저쪽 세계 플루토를 보내고 나서 널 기다리는 데 걸린 시간은 반 년 정도야. 시간이 그렇게 많이 어긋나지는 않았어.” ”저쪽 세계의 플루토…… 그래, 스텔라의 가설이 맞았던 모양이구나.”

국장의 말에 당황하는 내 옆에서 에리카가 덧붙였다. 나는 이곳에서도 사건의 동시성으로 인하여 내 귀환 시점에 맞추어진 플루토의 귀환이 있었다는 것을 납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년이라는 시간 차이는 낮설게 느껴졌다.

“잠깐만, 이상한데? 처음에 우리가 다 같이 에피카로 갔다가 너희가 먼저 복귀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19년이 흘렀는데, 그 뒤로 플루토를 보내고 내가 돌아오기까지가 반 년 밖에 안 흘렀다고? 그 반 년 동안에도 나는 저쪽 세계에서 에피카로 똑같이 항해했는데, 그럼 그 동안에도 다시 19년이 흘러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플루토가 설명해야 하는데. 보다시피 애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진 채 여전히 내 하반신을 끌어안고 있는 플루토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크리스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플루토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이, 물리학자. 대답해 봐.”

“…….”

“참 나, 이거 설마 또…….”

그리고 크리스가 플루토의 어깨를 뒤로 살짝 잡아당기자, 울다가 탈진했는지 어느새 기절한 플루토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 후 에리카와 크리스에게 들은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플루토처럼 생긴 데다 플루토라는 이름을 쓰는 여자가 자기가 우주국 소속이라면서 당당하게 보안요원들을 제치고 우주국 정문으로 밀고 들어오려 하는데……!”

“뭐, 그 물리학자 녀석 성격 알잖아? 우리끼리는 도저히 대화가 안 될 거 같아서 침울해 있던 플루토 녀석을 끌고 나왔지. ……왜 침울해 있었냐고? 그야 네가 없어졌던 탓도 있고…… 내가 혼내기도 했고 말이지.”

“흠흠, 크리스, 네가 좀 심하게 혼내긴 했어.”

“혼날 만 했잖아? 루카, 너도 알다시피 녀석이 에피카에 가까이 가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사고가 일어난 거잖아. 무슨 그거 혼냈다고 도대체가 사람이 어떻게 반 년 넘게 울먹거리면서 살아? ……뭐? 기억이 없다니?”

“하여튼, 루카 네가 플루토랑 플루토…… 아니, 그러니까 남자 플루토랑 여자 플루토…… 내가 말하면서도 어지럽긴 한데, 하여튼 두 녀석이 대화하는 걸 봤어야 돼. 크리스가 플루토를 끌고 나오는 동안 내가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는 녀석을 제지하고 대화를 좀 해 봤는데, 그때로부터 두 시간 쯤 전에 눈을 떠 보니까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고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서 우주국까지 찾아왔다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플루토가 크리스한테 끌려나오는데…….”

“그때 그 녀석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돌변하던 걸 네가 봤어야 해, 루카.”

“맞아. 울기 직전 표정으로 계속 있던 애가 그 여자를 보더니 울음기가 순식간에 싹 가시는 거 있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여자 플루토한테 다가가서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상황이 정리돼 버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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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플루토야?”

“응. 너도?”

“맞아. 그럼?”

“역시 그렇지?”

“그렇네. 그럼 우리 쪽 우주선은?”

“그건 국장한테 물어봐야되는데…… 아, 에리카가 알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너는 남잔데, 에리카는 여자네? 크리스도 남자고. 스텔라는 남자야, 여자야?”

“스텔라가 누구야?”

“원래 이름은 루카랬어.”

“루카? 우리 루카는 남자야.”

“그렇구나. 우리 루카는 여자라서 스텔라로 이름 바꿨거든.”

“아하, 그럼 성별도 그런 기준으로 바뀌는 건가?”

“그런 거 같아. 그럼 난 일단 돌아가 볼게. 에리카, 나 우주선 좀 줘! 대신 스텔라, 아니 루카 돌려줄게!”

“맞아, 에리카! 우리 루카 돌려받으려면 얘한테 우주선 줘야 돼!”*

“…… 아니, 만난 지 30초도 안 돼서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 버리고는 나한테 냅다 우주선을 내놓으라고 하면 뭐 어쩌라는 거야? 뭐, 국장한테 말했더니 옛날에 발견된 외계 우주선이 있다고 하길래 거기에 태워서 보내긴 했지. 루카, 그 우주선 원래 너랑 국장만 알고 있었다며? 네가 없어서 국장이 직접 안내해주더라.”

“자, 잠깐만. 그게 끝이야?”

이야기를 듣다 말고 당황한 나는 에리카의 말을 끊었다. 그야, 무언가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플루토는…… 저쪽 플루토는 여기 온 지 하루만에 우주선으로 돌아간 거야? 나는 저쪽 우주에서 두 달이나 있다가 왔는데?”

“뭐, 플루토가 설명하기로는 에피카가 사건을 붙잡아 두는 작용을 하는 거라던데.”

“사건을 붙잡아 둔다니?”

“사건의 동시성 어쩌고 하던데. 에피카는 평행세계 간에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관문이고, 그 관문을 중심으로 두 우주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은 동시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한쪽 우주에서 먼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반대쪽 우주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할 때 까지 자신의 중력으로 그 사건이 흘러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거라고.”

“…… 말이 되네. 그러니까 여기에서 출발한 플루토가 에피카를 통해 스카디에 넘어가려 한 사건은 에피카 내부에서 붙잡혀 있었다는 거지? 두 달 뒤에 내가 스카디에서 출발해 에피카를 통과할 때 까지?”

“그런 거 같은데.”

“하여튼 미친놈, 그걸 혼자 추론해낸거야?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저, 원정대장님. 검사 결과가 나와서요…….”

“아아, 네. 이리 주세요.”

우리는 우주국에서 지정해 준 병원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외우주를 다녀온 후였기에 의무적으로 정밀검진을 받아야 했던 탓이다.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나는 간호사의 설명을 듣다 말고 흠칫했다.

“—이건 엑스레이 촬영 결과구요. 뼈에 철심이 박힌 부분이 많은데, 루카 님이 말씀해주신 대로라면 다발성 분쇄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그쪽에서 임의로 조치한 것으로 보이네요. 아직은 무리한 활동은 하시면 안 될 것 같고, 3개월 정도 후에 철심 제거 수술을 다시…….”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떤 쪽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스카디의 에리카가 건네준, 베스타로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무심코 주머니에 가지고 있었던, 스카디에서 에피카까지의 웜홀 좌표가 기록된 바로 그 쪽지.

나는 간호사의 말을 끊어먹고 에리카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에리카!”

“으익, 까, 깜짝이야. 놀랐잖아.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저쪽 세계 플루토한테 쪽지 줬어?”

“쪽지? ……아, 설마 좌표 쪽지?”

“그래. 줬구나, 휴…….”

“어, 뭐, 주기야 줬지. 근데 안 가져갔어.”

“……뭐?”

“뭐라더라? 평행세계 간의 등가교환이 깨지면 어쩌고, 하여튼 무슨 큰일이 일어난다면서 쪽지에 적힌 내용을 그 자리에서 달달 외워버리고는 그냥 가던데?”

나는 머리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심장의 박동이 불안하게 가속하고 있었다. 어지러워지려는 시야를 부여잡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플루토는 안 다쳤어?”

“안 다쳤냐니?”

“수술이나 나처럼 몸에 철심 박거나, 그런 거 안 했냐고.”

“하루만에 돌아갔으니까, 그런 건 할 시간도…… 설마, 잠깐만.”

나는 엑스레이 결과지의 내 전신 뼈 사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박힌 수백 개의 철심이 보였다. 뒤늦게서야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쪽지. 철심. 내가 스카디에서 보냈던 두 달 간의 시간. 수액. 음식. 닉스 그릴. 스카디의 플루토는 이곳에 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돌아갔기에 이 우주와의 상호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겠으나, 그곳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스카디에 있었던 나는……

아니, 애초에 나와 플루토가 교환된 것 부터 이상했다. 에피카에서 정말로 등가교환이 일어났다면 나와 스텔라가 서로 교환되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에피카에서 일어난 우주 간 교환은 애초부터 나와 플루토라는 서로 다른 존재가 교환된 것이었고, 나와 녀석은 양쪽 우주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며 전혀 다른 상호작용을 했다.

뚝, 하고 어지럼증이 멈췄다. 시야가 돌아오며 머리가 차게 식는 느낌이었다.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자, 그 너머 멀리의 우주가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나는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문 너머의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화로웠으나, 나는 전에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등가교환이 깨졌다.

인류는 미지에 도전한 대가로, 언제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모르는 불균형을 우주에 남기고 말았다.

Finale.